그로부터 1000년이 지나 이 땅에 다시 다인종·다문화 국가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한국은 내년이면 전체 인구 중 외국인 비중이 5%를 넘어설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의한 ‘다인종·다문화 국가’다. 초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를 막으려면 이민을 더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기대되는 효과 못지않게 노동시장에 나타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높다.
다만 이런 분석은 한 가지 가정을 전제로 한다. 내국인과 이민자가 노동시장에서 완전 대체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즉, 근로자로서 내국인과 이민자가 동일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같은 일자리를 놓고 경쟁한다면 이민은 내국인의 고용과 임금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실제 노동시장에서 내국인과 이민자는 완전 대체 관계가 아니다. 숙련도에 차이가 있고 모두 같은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공장 생산 라인에 임금이 낮은 외국인 직원을 고용할 수 있게 되면 원래 있던 한국인 직원에게 월급을 더 주고 관리자 역할을 맡겨 공장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이런 경우 이민은 오히려 내국인 일자리와 고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단기적 영향과 장기적 영향도 다르다. 이민이 유입되면 단기적으로는 근로자의 임금이 낮아진다. 그런데 임금이 하락하면 자본 투자의 수익률이 높아진다. 이에 따라 자본 투자가 늘어나면 노동 수요가 증가해 고용이 증가하고 임금도 오른다. 이민자 유입으로 노동 시장에 발생한 단기 충격이 장기적으로는 완화되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외국 인력 유입이 내국인 근로자의 고용과 임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한 결과가 있다. 이 연구에선 외국 인력 유입으로 대졸 이상 내국인 근로자의 임금은 높아진 반면 고졸 미만 내국인 근로자의 임금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고숙련 근로자는 혜택을 받고, 저숙련 근로자는 피해를 본다는 의미다.
이런 결과는 국내에 들어오는 이민자의 평균적인 교육 수준 및 숙련도가 낮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2019년 국내에 들어온 이민자의 30% 정도만이 대졸 이상 학력이었다. 고졸 이하 외국 인력이 대규모로 유입될 경우 비슷한 숙련도의 내국인 일자리를 잠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민 문제는 단순히 노동력 확보 차원에서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한국보다 이민자 비중이 높은 나라에선 인종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김선빈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11월 한은 ‘금요 강좌’ 강의에서 “이민 확대는 인구 구성을 바꾸는 것”이라며 “일할 사람이 부족하니 데려와서 쓰자는 식으로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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